코로나 19 : 자유 VS 안전, 끊임없는 논쟁들
미국의 코로나 감염자 수가 160만 명을 넘었다. 미국 정부는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들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H.R 6666인데, 어째서인지 벌써부터 미국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벤 스완의 뉴스를 통해서 처음 접했는데 들으면서 "이거 한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확진자를 추적하는 시스템에 있어서 한국에서도 여러모로 불평불만은 있었다. 특히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어긴 감염자들에게는 신상 털기라는 응벌이 가혹하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감염자 추적이 감염의 확산을 막는데 효과적이라고 칭찬하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놓고 "자유를 침해한다!"라며 비판하는 의견들이 솟구치고 있다.
미국인들은 과도하게 자유를 중시한다. 때로는 멍청해보인다. 한국에서 개인의 자유를 전체의 이익보다 중요시 하는 미국인들의 견해를 보고 하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자유를 꼽는 나조차,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지말자고 시위하는 사진을 보면 답답할 때도 많다. 감염 상황에 있어서 부주의는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에 기반해서 본다면, 미국인들의 그러한 반응은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한국엔 친절한 금자씨가 있다면, 미국에는 조커가 있다. 한국에서 그려내는 공포스러운 악인은 친절하다고 여겨진, 선한 그 사람이 실은 어두운 내면을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 그려내는 악인의 모습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즉 외면을 숨긴다는 점에서 구분이 된다. 총기 사고와 테러리즘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에게 서로 누군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는 큰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인들의 마스크에 대한 저항을 마냥 웃으며 바라 볼 수는 없다. 문화적 차이가 가져온 결과이다.
한국은 지나치게 전체를 중시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코로나 감염자들은 바이러스의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에 가까운 따가운 시선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공개된 동선에 따라 신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마치 중국의 인민 재판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한국인들의 놀라운 협동심을 국제사회에 보여준 좋은 예가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한계점을 직면하였다. 바로 개인보다 전체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회 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할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감염자들을 비난하면서 허비해왔는가?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그 자체에 집중할 시간이다. 나아가, 바이러스의 적은 너와 내가 아니라, 바이러스 그 자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