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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혐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 차별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다크 투어리스트>, 남아공 편에 나온 기괴한 장면이 인상깊다. 한 무리의 백인들이 흑인에 의한 학살을 대비하여 대피를 연습하는 장면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나라에서 백인이 흑인을 두려워 한다니.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이 되어서야 완전 폐지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흑인들이 백인들을 학살하는 것은 예정된 미래라며 두려워했다. 내가 기괴하다고 느낀 것은 이들이 학살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학살을 자행하지는 않았더라도, 존속하는 차별 법안에 침묵하고 지낸 이들이 후일에 있을지 모를 학살에 벌벌 떠는게 꼴사나웠다. 누군가에겐 몇 세기동안 지속된 현실이었는데, 누군가에겐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두려움이다. 몇 분 안되는 이 장면을 통해, 왜 고질적인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David Farrier 

  혐오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차별 당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여전히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과거보다는 다양성을 존재하는 의견들이 우세하고 있다. 혐오주의자-즉 백인, 남성과 같은 기득권층-들은 그 근거를 과거와 비교해서 찾으려고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는 누군가에게서 강탈한 것이며, 인권 신장 운동은 몇 세기 전에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목적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백인들은 백인이기 때문에, 남성들은 남성이기 때문에 더 차별당한다고, 더 입막음 당한다고, 평등을 말하면서 유색인종에게 너그럽고, 여성에게 너그럽다고 생각한다. 평등했던 선례가 없기 때문에 차별당했던 과거와 비교를 하며 역차별이 존재한다고 소리친다. 

 혐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자원이 부족했던 유럽인들은 풍부한 자원을 찾아 식민지 개척을 해나간다. 남의 것을 강탈해서 내 것을 늘리자는 도둑놈 심보이다. 착취의 역사 이후, 이들은 그들이 보복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들이 힘을 쥐고, 마치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흑인들이 백인들을 학살할까봐 두려워한다. 이는 흑인 뿐만이 아니라, 동양인에게도 해당이 된다. 오랜 기간 동안, 미국에서는 동양인들이 자기들을 정복할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2차세계대전 즈음 일본인들의 이주를 금지시킨 것도 이를 입증하는 사례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옐로페이스를 하고 백인이 동양인을 연기했던 것처럼, 동양인들의 사회적 진출은 제한되어 있었다.

 혐오주의자들은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모두가 자기들처럼 지위가 낮은 세력을 아래에 두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차별받는 소수자의 생각은 다르다. 마틴 루터 킹은 평등을 외쳤고, 성공했다. 말콤 X는 분리를 외쳤고, 실패했다. 진정 이들이 바라는 것은 기득권층의 전복이 아닌, 평등이다.